우리 학교 아이들의 유난한 헤맑음의 원인은 둘인것 같다. 아름다운 학교 풍광 그리고 군것질할 매점이 반경 1킬로내에 없다는것. 복지란 물질을 제공하는게 아니라 삶을 아룸답게 해주는 것임을 다시 느낀다. 송파지역 주민들은 참으로 복받은 사람들이며, 공원으로 감싸인 우리학교 아이들도 복받았다. 이런게 복인데 왜 학부모는 엉뚱한걸 찾는지 모르겠다.
이 글은 4년 전에, 저의 블로그가 무명이던 시절에 썼던 것입니다. 이제 방문자가 꽤 많아진 지금, 묻어두기 아까워서 다시 발굴해 올립니다. ===================== 학교에는 두 종류의 교사가 있다. 일반 기업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있듯, 학교에는 정규직 교사와 비정규직 교사가 있다. 비정규직 교사 안에서도 여러 구분이 있다. 고용 기간이 한정된 것 외에는 정규직 교사에 준하는 보수를 적용받는 기간제교사가 있고, 영어 수학 등 수준별 수업을 담당하는 수준별 강사가 있고, 인턴 교사가 있고, 영어회화 전담 강사가 있고, 그 외에 상담사, 사서 등이 있다. 원래 학교의 비정규직 교사는 교사가 일정기간 이상의 휴직, 휴가를 냈을 경우, 기타 유고시에 그 결원을 보충하기 위해 근무하는 임시교사 뿐이었다. 그런데 1999년 명예퇴직 폭증(김대중과 이해찬의 업적이다)으로 인한 초등교사 부족사태를 계기로 임시교사라는 명칭이 기간제교사로 바뀌면서, "임시"가 아닌 "정시"에도 기간제 교사를 채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는 당시 특수한 상황으로 보아 어쩔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문제는 교원수급이 안정되고, 초등교사조차 임용고시 경쟁률이 1:2를 넘어서게 된 상황에서도 여전히 기간제 교사 제도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교사라는 위계서열상 상당히 고급(?)스러운 노동자들에게도 어김없이 정규직/비정규직 내부분할이 시작되었다. 특히 사립학교의 경우 이를 악용해서 지역에 따라서는 신규채용 교사의 무려 84%가 기간제 교사인 곳도 있다. 즉 정규직 교사가 퇴임한 자리를 특별한 이유 없이 기간제 교사로 충원하는 것이다. 심지어 지역에 따라서는 공립학교까지 이런 일을 자행하고 있다. 앞으로도 신자유주의 정책의 기조상 공무원 정원을 감축하려 할 것이고, 따라서 신규교사 채용 규모도 축소되어, 그 차이는 고스란히 기간제 교사로 충원될 것이다. 비정규직 교사의 문제는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와 흡사하다. 우선 이들은...
그들이 밤새도록 라벨지 붙여가면서 서울교육혁신한마당에서 지우려 했던( 이전 글 링크 ) 곽노현 교육감의 축하메시지 원문입니다. 서울교육혁신 한마당을 축하합니다 곽노현 (서울특별시 교육감) 아침 일찍부터 비가 옵니다. 겨울을 재촉하는 늦가을비의 찬 기운이 옷깃을 파고듭니다. 비에 젖은 먼 산을 보기 위해 운동을 나갔습니다. 벽 따라 난 삼각형 모양의 길 안쪽, 풀이 무성한 곳에 서서 심호흡을 합니다. 물을 흠뻑 받은 들풀 사이로 오늘 따라 유난히 토끼풀 꽃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걸로 꽃반지를 만들어서 아내에게 끼워 준 적이 있습니다. 마침 면회시간에 보여줄 생각으로 세 송이를 땄습니다. 담벼락 아래 이름 모를 키 큰 풀 두 포기가 탁한 자줏빛으로 물들어 늦가을을 실감케 합니다. 자세히 보니 두 포기 중 하나는 거의 물이 든 반면 다른 하나는 반쯤만 간신히 색이 바뀌어 있습니다. 나란히 서서 완전히 똑 같은 토양조건과 자연 환경에서 컸는데도 이런 차이가 나는 게 신기합니다. 교실에선 더욱 다양한 아이들이 3ㆍ40명씩 모여 서로 기쁨과 상처를 주고받으며 크고 있습니다. 각자의 다양성과 차이를 풍요와 자극의 원천으로 삼을 뿐 차별과 편견으로 배척하지 않도록 교육하는 것이 공동체를 위한 인성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교실마다 잘 어우러진 꽃밭이 되길 기원합니다. 저는 학생들의 자존감 회복, 자기주도 역량함양, 삶의 기술교육, 그리고 학급회의와 학생회 등 학생자치역량 강화가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문문화예술교육 및 체육수련교육 등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교육이 최우선이며 진로적성교육이야말로 교육의 궁극일 것입니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라 적성 순이기 때문입니다. 교무회의와 학교운영위원회를 실질화하여 교사의 자발성을 살려야 하고, 지역사회의 참여와 교육기부가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민주사회의 공교육이 마땅히 수행해야 할 사명과 기...
아도르노가 분류한 음악청취유형 ▲ 프랑크푸르트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에는 빈에서 음악에 종사하였으나, 1931년 모교의 철학강사로 취임하였다. 1934년 나치스에 의해 추방되어 미국으로 망명하였다가, 1949년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 다시 독일로 귀국, 호르크하이머와 함께 사회조사연구소(社會調査硏究所)를 개설하였다. 1950년에 프랑크푸르트대학 철학교수로 취임하는 한편, 파시즘 연구를 주제로 한 《권위주의적 인간(權威主義的人間)》을 간행하는 등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그의 사상은 체계성을 거부하고, 각 이데올로기 영역에 내포된 정신의 변질적 경향을 날카롭게 분석해내는 데 특색이 있으며, 근대문명에 대하여 독자적인 비판을 제시하였다. 또 그는 현대음악의 성격에 대해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긴 바 있다. 주요저서로는 위에 기술한 것 이외에 《현대음악의 철학》(1949), 《Soziologica》(1962), 《부정적 변증법(否定的辨證法)》(1966) 등이 있다. 1. 18세기의 음악비평가 로흐리츠는 음악회에 참여하는 관중의 청취유형을 넷으로 구분했다. 첫째, 허영과 유행으로 음악을 듣는 그룹, 둘째 음악을 오직 귀로써만 듣는 그룹, 셋째 음악을 오직 이해력으로 듣는 그룹, 넷째 음악을 모든 영혼으로 청취하는 그룹. 2. 베셀러에 따르면 음악작품이 탄생한 시대에 따라 청취유형이 달라진다. 그는 시대적 음악양식과 청취유형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음을 주장하며, 르네상스 음악은 '알아듣는 청취', 바로크음악은 '연관시키는 청취', 고전음악은 '능동적 청취', 낭만음악은 '수동적 청취'를 하게된다고 주장했다. 3. 아도르노는 음악청취 유형을 8가지로 구분하며 이를 사회적 개념으로 정리하고 심리상태와 연관짓는다. 이들 유형은, 구조적 청취유형, 유능한 청취유형, 교양 청취자유형, 감성적 청취유형, 질투 청취유형, 재즈 청취유형, 오락 청취유형, 무관심적이며 비음악적이고 반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