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버리기" 나는 왜 이책에 참여했는가?
나는 글을 굉장히 빨리 쓴다. 그런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할수 없는 비밀의 피아노 배틀처럼 마주 앉아서 글쓰기 배틀을 하면 나하고 대적할 사람은 대한민국에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틀만에 단행본으로 출판된 책의 한 절을 a4 6매 정도 분량으로 써 달라고 하면 그건 상당히 무리한 부탁이다. 하지만 나는 그 무리한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 처럼 무리한 부탁을 기꺼이 받아들인 24명의 글이 모여서 책을 이루었다. 처음에 나는 이 책 제목을 보고 뜨악했었다. 이거 수꼴의 음모에 말린게 아닐까 의심마저 했었다. 제목이 곽노현 버리기 아닌가? 아마 이 제목에 낚여서 이 책을 구입할 수꼴 어르신들도 제법 있을 것이다. 김용민의 '조국 현상을 말한다'에 낚이듯이 말이다. 하지만 편집자의 글을 읽고 바로 무슨 뜻인지 알았고, 내가 애초에 이 책의 공동저자로 참여한 취지에 가장 걸맞는 제목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곽노현을 버리려고 이 책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곽노현을 버리려는 사람들에 대해 쓰려고 참여했기 때문이다. 2011년 8월 말부터 2012년 4월까지 기간은 이른바 진보라 스스로를 분류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시험의 시기 시련의 시기였다. 그리고 그 시험과 시련의 가운데에 곽노현, 아니 곽노현 현상이 있었다. 처음 박명기에게 2억을 주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의 멘붕이야, 나 역시 다른 진보진영 지식인들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진보진영 지식인들의 놀랄만큼 빠른 곽노현 버리기가 오히려 나에게는 더욱 실망스러웠다. 너무도 빨리 "그래, 저 사람도 별수 없었던 거야" 모드로 돌입해버렸던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자기들이 가슴에 품고 있던 시커먼 야망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진보를 가장한 출세주의자들이 자기들의 마음으로 타인을 해석하고,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더더욱 적극적으로 곽노현 버리기에 나섰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시쳇말로 "쉴드칠때 까지 치고, 정 안...